“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8:7-9)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이스라엘의 군대가 개선하자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과 다윗을 연호하는데 그 내용때문에 사울의 심기가 아주 불편하게 됩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의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한 영웅이지만 백성들이 자기보다 다윗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정치적인 라이벌로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사울에게 시기와 질투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 이날 이후로 그는 틈만 나면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다윗은 그를 피해 도망을 다니는 갈등 관계의 배경이 됩니다. 사울에게 든 불쾌함이라는 감정은 ‘공포나 괴로움 속에서 마음이 깨어져 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목동이었을 때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지만 그가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니 그를 극도로 경계하게 되었고 더구나 백성들이 그를 자신보다 더 좋아하는 모습에서 그 감정이 폭발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사울은 그전부터 악신에 의해 정신과 감정에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16:14) 하나님의 뜻을 잘 파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나은 자를 시기하고 두려워하여 그를 제거하려는데만 온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시기는 결국 그가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은 사람에게도 버림받습니다. 그렇게 노래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 노래를 듣고도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아 회개하지 않았던 사울의 모습이 문제였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모든 관계를 깨트리며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시기와 질투를 거듭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이같이 사울은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함으로 패망의 길을 걷게 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순종하는 길을 걸어갑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제거하려는 사울의 악한 계획조차도 도리어 다윗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세우려는 뜻을 이루는 방편의 하나로 사용하십니다. 오늘도 나는 어떤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혹 시기와 질투로 내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주변의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고 있습니까? 말씀을 통해 자신을 깊이 돌아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