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그가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19:1,2)
우정이라 하면 관포지교를 말하고 지초와 난초같이 향기로운 사귐을 뜻하는 지란지교가 있습니다. 인생의 길에 말이 없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벗을 가진다는 것, 그 고귀한 사귐보다 소중한 것도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지란지교를 꿈꾸며 사는지 모릅니다.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에서 >
다윗과 요나단,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을 보여주는 친구 사이입니다. 그 아버지 사울은 질투와 시기로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요나단은 자기 목숨을 잃어버릴 위험을 감수하며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다윗도 요나단을 너무나 사랑했는데 후에 길보아 전투에서 요나단이 전사했을 때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렇게 애가를 불렀습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삼하1:26).
우리는 다윗과 요나단을 통해 참된 친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친구가 위기에 처하게 될 때 위험을 무릎 쓰고 그를 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처럼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큰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지란지교를 꿈꾸며 우리도 누군가의 허물없는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