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2:12)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2:26)
한나의 기도는 마리아의 찬가와 비슷합니다. 단순한 기도 응답에 대한 감사를 넘어서 깊은 신앙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하고 오만한 자를 꺽으시며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역전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십니다. 이 기도에는 이스라엘 역사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리라는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땐 후에 약속한 것처럼 실로의 여호와의 집에 두려고 올라갑니다. 모정의 애끊는 아픔을 참고 사무엘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2장의 내용은 그 당시 제사장인 엘리 가정의 모습과 경건하게 자라는 사무엘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여줍니다. 엘리의 두 아들 비느하스와 홉니는 제사를 섬기는 제사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통하여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들은 제사장 일을 하였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더 나아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고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엘리의 비극은 그런 아들들의 악행을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할만큼 영적인 권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시대가 ‘아버지 부재의 시대’입니다. 가정에서와 사회의 어른으로서 자신의 삶에서 나오는 권위로 자녀들이 바른 길을 가도록 해야하는데 그런 가정의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는 아버지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엘리가문은 비극적 몰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 타락과 몰락과 대비되는 어린 사무엘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어린 사무엘이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를 섬기는 모습은 비록 어리지만 단정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잠언20:11)는 말씀이 어린 사무엘에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아이 사무엘은 그렇게 자라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는자가 되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신앙인격으로 자란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신앙인격이 자라는 요람(cradle)입니다. 부모의 기도는 자녀의 평생축복입니다. 한나같이 기도하는 어머니로 자녀를 키우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아버지를 그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자녀를 축복하고 때로는 말씀으로 훈계하는 권위를 통하여 은총을 받는 가정으로 가꾸어가는 아버지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