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화(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시가 짧아서 좋습니다. 그래도 그 정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니 시가 갖는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쟁기질로 하루의 고단한 일을 마치고 물을 마시는 소, 할머니도 밭일로 힘든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맞고 있습니다. 할머니에게는 자식 같은 소이기에 목덜미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눈길이 머문 곳은 소와 할머니의 부은 발잔등입니다. 안쓰럽게도 부은 발잔등이 서로 닮았습니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지만, 마음은 꼭 언어를 통해서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네가 수고 많았다’ ‘참 고맙다’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할머니의 손길에는 그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 시의 제목인 묵화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히 배여 드는 여운이 남습니다. 정현종 시인도 ’비스듬히’라는 시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은 상호의존성이 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지 않고 더불어 살아갑니다. 모진 마음, 응어리진 마음을 갖지 말고 부드럽게 품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네 것 내 것 구분하며 선을 긋고 살아가면 나중에 외롭습니다. 비스듬히,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