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29:13,14)
일제 강점기의 시인인 청마 유치환은 자신이 사랑했던 이영도 여사에게 5,000여 통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사랑의 편지가 아름다운 시가 되었나 봅니다. 그중 ‘행복’이라는 시가 유명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그리운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라는 구절이 인상 깊습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지만 진정한 사랑은 내가 사랑한 만큼 돌려받는 계산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받음의 행복만을 아는 사람은 미숙한 사람이고 진정한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역대상의 마지막 장인 본문은 왕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누리는 아주 특별한 신앙적인 희열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직 공사가 시작된 것도 아닌데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헌신하여 하나님의 전이 완성될 것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기쁨의 특성 중에 하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미리 ‘당겨서’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어느 장이 이런 터져 나오는 기쁨과 감격으로 가득찬 내용이 있을까요? 이 기쁨이 특별한 것은 받음의 기쁨보다 드림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과 물질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께 드림에도 아깝거나 허전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기뻐할 수 있다면 그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드림과 헌신의 기쁨을 알지 못한 자는 기쁨과 축복의 정상에 서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는 기쁨도 크지만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드림의 기쁨은 더 큰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상한 기쁨을 모두 누리며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니보다 행복하나니라’